731부대의 진실: ‘마루타’라 불린 희생자들과 왜곡된 역사의 이면
우리는 흔히 ‘마루타’라는 단어를 잔인한 생체 실험의 대명사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 뒤에 숨겨진 인간 존엄성의 파괴와 전후 교묘하게 은폐된 진실에 대해서는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요? 오늘은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손가락 중 하나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로 기록된 제731부대의 실상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731부대와 ‘마루타’의 유래: 인간을 통나무로 부르다
1930년대 중반, 일제는 만주 하얼빈 인근에 ‘관동군 교도 급수부’라는 위장 명칭으로 제731부대를 설립했습니다. 이 부대의 수장인 이시이 시로(石井 四郞)는 생화학 무기 개발을 위해 살아있는 인간을 실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마루타(丸太)’는 일본어로 ‘껍질을 벗긴 통나무’라는 뜻입니다. 부대원들은 실험 대상자들을 인간이 아닌 재료로 취급하기 위해 이 멸칭을 사용했습니다. 수용소에 수감된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고, 그들이 숨지는 순간까지도 ‘소모품’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주요 생체 실험의 내용
- 동상 실험: 영하의 날씨에 사람을 묶어두고 팔다리를 얼린 뒤,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망치로 두드려 피부가 벗겨지는 과정을 관찰했습니다.
- 진공 실험: 피실험자를 진공실에 넣고 기압을 낮춰 장기가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 생체 해부: 마취 없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거나, 서로 다른 장기를 이어 붙이는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만행이 자행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거나 왜곡된 내용들
역사는 때로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되면서 본질이 흐려지기도 합니다. 731부대와 관련해 바로잡아야 할 몇 가지 오해를 짚어봅니다.
오해 1: “희생자는 중국인뿐이었다?”
가장 큰 왜곡 중 하나는 희생자의 국적입니다. 731부대의 희생자(약 3,000명 이상 추정) 중에는 수많은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심득룡, 이청천 장군의 부하들, 그리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동포들이 만주 현지에서 체포되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오해 2: “패망 직후 모든 증거가 사라졌다?”
일본군은 패전이 임박하자 부대 시설을 폭파하고 생존자들을 살해해 증거를 인멸했습니다. 하지만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핵심 간부들은 실험 데이터를 챙겨 일본으로 도주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훗날 미국과의 밀약에 사용되어 그들이 전범 재판을 피하는 면죄부가 되었습니다. 즉, 증거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거래’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오해 3: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는 과장이다?”
오히려 현실은 매체보다 더 참혹했습니다. 당시 부대원들의 증언과 발굴된 유골, 그리고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공개된 보고서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도적 행위가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체계 아래 수행되었음을 증명합니다.
731부대 속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의 항거
731부대의 비극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루타’라는 이름의 실험 도구로 전락하기를 거부하며, 죽음의 문턱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독립 의지를 지켜냈습니다.
굴하지 않는 혼, 심득룡(沈得龍) 지사
심득룡 지사는 731부대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려다 체포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소련군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만주 침략 전술을 파악하던 중, 1943년 하얼빈에서 일본 헌병대에 붙잡혔습니다.
- 항거의 기록: 그는 부대 내에서도 일본군의 회유와 고문에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심 지사는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된 후에도 동료 수감자들에게 “우리는 죽어도 조선의 정신은 죽지 않는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 비극적 결말: 결국 그는 1943년 겨울, 독가스 실험의 희생양이 되어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후 731부대원들의 증언과 당시 수사 기록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이름을 숨긴 투사, 이기수(李基洙) 지사
이기수 지사는 함경남도 출신으로, 만주 지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 1941년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731부대 특별 감옥인 7번, 8번동에 수감되었던 인물 중 한 명입니다.
- 항거의 기록: 이기수 지사는 수용소 내에서 진행된 이른바 ‘사상 개조’ 교육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일본군이 그를 ‘특별 이송’ 대상(실험 대상자 지칭)으로 분류한 이유는 그가 수용소 내에서도 일본군 간수들에게 당당히 맞서며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했기 때문입니다.
- 최후: 그는 1943년경 페스트균 주입 실험의 희생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열과 통증 속에서도 그는 일본어 사용을 거부하고 끝까지 우리말로 항거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록으로 증명된 희생, 한성진(韓聖鎭) 지사
한성진 지사는 항일 군사 활동 중 체포되어 731부대로 압송되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731부대의 인적 자원 기록인 ‘관동군 헌병대 특별 이송 명단’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 항거의 기록: 그는 감옥 안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며 일제의 비인도적인 처우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실험용 음식을 거부하며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그의 모습은 당시 부대원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 역사적 의미: 한성진 지사의 사례는 731부대가 단순히 ‘무작위 희생자’를 쓴 것이 아니라, 저항 의지가 강한 독립운동가들을 ‘제거’하고 ‘실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한 필수 지식
우리가 731부대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분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시는 이런 반인륜적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전범들의 전후 행보: 면죄부의 비극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731부대의 관계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시이 시로는 미국에 실험 자료를 넘겨주는 대가로 사면받았으며, 다른 간부들은 일본 내에서 유명 제약회사의 설립자, 녹십자의 임원, 의과대학 학장 등으로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천수를 누렸습니다. 이들이 만든 혈액 제제나 의학 지식이 현대 의학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은 인류사적 비극이자 아이러니입니다.
하얼빈 731부대 죄증 진열관
현재 중국 하얼빈에는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희생자들의 명단과 당시 사용된 실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잠든 한국인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인정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합니다.
결론: 잊지 않는 것이 최고의 복수입니다
마루타라 불렸던 이들은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었고, 독립을 꿈꾸던 청년이었으며,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순간, 역사는 반복될 준비를 합니다.
731부대의 기록을 살피며 제가 느낀 점은 인간의 잔혹함이 ‘과학’이나 ‘국가’라는 명분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괴물이 될 수 있는가였습니다. 정확한 역사 인식을 통해 우리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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